부르심에 응하라
페이지 정보
본문
부르심에 응하라
선교의 유산
이 모든 것은 아주 긴 제목의 소책자에서 비롯했다. 1845년에 출판된 T. M. 프레블의 책자 이름은 『계명에 따라 첫째 날이 아닌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준수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글』이었다.
메인주 패리스에 있는 에드워드와 세라 앤드루스 부부의 집에 이 12페이지 분량의 책자가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15세의 메리앤 스토얼이 그 전도 책을 발견하고 읽기 시작했다. 스토얼 부부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대하며 농장을 팔았고, 1844년 10월 22일 대실망 이후 앤드루스 가족과 함께 살았다.
자신이 읽은 것에 감동한 메리앤은 프레블의 전도지를 오빠인 오스월드에 보여 주었고, 그 역시 안식일 진리에 확신을 얻었다. 남매는 다음 안식일을 자신들이 아는 한 최선을 다해 지켰다. 그리고 다가온 월요일, 메리앤은 17세의 존 앤드루스에게 자신이 읽은 소책자를 건넸다.
전도지를 읽은 존은 메리앤에게 그녀의 부모님도 그 책자를 읽었는지 물었다. 메리앤은 “아니.”라고 대답하고는 “하지만 나는 읽었어. 존, 너는 참안식일을 지킬 생각이 있어?”라고 물었다. 다음 주말, 두 가족의 자녀와 부모는 함께 안식일을 지켰는데 집 안의 방 한곳에 모여 예배드렸다.1
경이로운 삶
존 네빈스 앤드루스의 놀라운 봉사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일곱째 날 안식일이라는 주제를 깊이 파고들면서 앤드루스는 결국 이 근본적인 성경 가르침에 관한 주요 저작인 『안식일과 주일의 역사-구약의 기원과 그리스도 당시, 초기 교회, 중세 시대의 준수』를 집필했다. 1859년에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지금도 아마존에서 판매되고 있다.
어려서부터 성실하고 정직하며 경건하다고 알려진 J. N. 앤드루스는 하나님과 그분의 교회를 사심 없이 섬기라는 부르심을 늘 흔쾌히 받아들였다. 예리한 지성, 뛰어난 필력과 지도력 덕분에 그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설립에 귀한 지침을 제공했다. 뉴잉글랜드 북부에서 무보수 순회 복음 전도자로 봉사할 때도, 『리뷰 앤드 헤럴드』의 편집인으로 일할 때도, 1860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라는 명칭을 결의하고 1863년에 대총회를 조직한 위원회의 일원으로 활동할 때도 그리고 제3대 대총회장(1867~69)을 역임할 때도 앤드루스는 하나님의 선교 사업에 온전히 헌신했다.
즐겨 봉사하다
이런 그의 행적으로 1874년 8월 14일에 열린 대총회 총회에서 대표들이 “행정위원회가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J. N. 앤드루스 목사를 스위스로 파송하기로” 결의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2
스위스의 재림 신자들은 미국에서 선교사가 와서 자국의 재림교회 사업 확립을 도와주기를 간청해 왔고, 앤드루스는 자녀 메리(12), 찰스(16)와 함께 그 부름에 응했다.
9월 15일, 앤드루스 가족은 영국 리버풀을 거쳐 스위스로 향하는 큐너드 기선 회사의 정기선 아틀라스호에 몸을 실었다. 앤절린 앤드루스는 1872년 3월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슬프게도 이 작은 가족은 아내와 어머니 없이 탑승했다.
스위스 선교 사업에 헌신하다
앤드루스는 도착하자마자 안식일 신봉자들을 모으는 일을 돕고 신문에 신자들과 함께하고 싶은 모든 사람을 초대하는 광고를 게재하는 등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 가장 큰 부담은 아마도 프랑스어 『시조』(Les Signes des Temps)를 출간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 사업을 잘해 내고자 그와 자녀들은 프랑스어를 제대로 배워 보기로 했다. 그들은 집에서는 프랑스어로만 대화하고 예외적으로 독일어를 사용하기로 약속했다. 영어는 긴급 상황이나 특별히 정해진 시간에만 사용하기로 했다.
이 작은 가족이 해낸 일은 참으로 놀랍다. 존 앤드루스는 프랑스어로 기사를 작성하거나 『리뷰』와 『시조』의 기사들을 정확하게 번역했다. 찰스는 타자를 치고, 원어민 수준으로 프랑스어를 배운 메리는 교정을 도왔다. 『시조』는 발행 부수가 500부에서 5,000부까지 늘어났다. 이 잡지는 프랑스 62개 지역 중 50개 지역과 스위스 전역, 스웨덴, 오스트리아, 헝가리, 프로이센, 작센, 알자스, 벨기에, 네덜란드, 영국, 웨일스, 스코틀랜드, 이탈리아, 에스파냐 등 당시 유럽 여러 나라에 배포됐다. 중유럽을 넘어 러시아, 인도, 이집트, 북미와 남미의 가정에도 프랑스어 『시조』가 전해졌다.3
죽도록 충성하다
진정 이 가족은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했고, 그중에는 죽도록 충성하며 그분을 섬긴 이도 있었다(계 2:10 참조). 메리 앤드루스는 1878년, 17세의 나이로 폐병(결핵)에 걸려 사망했다. 아버지 존은 죽어 가는 딸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결국 같은 병에 걸렸다. 그는 1883년 10월 21일, 5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아버지가 사망한 뒤 찰스는 미국으로 돌아와 스위스에서 만난 마리 안 디츠시와 결혼했다. 그는 1927년 7월 11일 사망할 때까지 리뷰 앤드 헤럴드 출판사에서 일했다.
훌륭한 모본
앤드루스 가족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 준 훌륭한 사례이다. 오늘날 어떤 이들은 집과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낯선 땅으로 가서 새로운 언어를 배워 그곳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부름을 받는다. 지금도 선교 활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는 이들도 있다. 수많은 사람이 의료 선교사, 교사, 최일선의 활동가로 봉사하고 있다. 또 다른 이들은 길 건너편 동네에 가서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을 그곳 사람들에게 전하라는 부름을 받는다. 인쇄물이나 인터넷, 소셜 미디어 또는 기타 수단을 활용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모두가 하나님의 선교 사업에 함께하라는 부름을 받는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선교 사업은 우리 교회 신자를 구성하는 남녀가 그 일에 힘을 모으고 그 노력이 목사와 교회 직원들과 연합할 때까지 결코 완성될 수 없다.”고 엘렌 화잇은 전한다.
“죄인들의 구원에는 열렬하고 개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그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해야지 그들이 우리에게 오도록 기다려서는 안 된다. 부지런히 활동하도록 사람들을 일깨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얼마 없다. 우리는 영원한 세계의 경계에 서 있다. 잃어버릴 시간이 없다. 매 순간이 황금처럼 귀하므로 자기 잇속을 챙기기에만 급급하면 안 된다. 선교지에서 하나님의 성실한 일꾼이 되고자 하나님을 열렬히 찾고 그분에게 힘과 은혜를 얻으려는 사람은 누구인가?”4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가겠나이다.”라고 대답하며 전 교인 선교 운동에 참여해 그분의 선교자가 되겠는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와 그분의 세 천사 기별과 그분의 성소 기별과 건강 기별과 재림을 드높이겠는가?
1 C. Mervyn Maxwell, Tell It to The World: The Story of Seventh-day Adventists (Mountain View, Calif.: Pacific Press Pub. Assn., 1977), 167
2 대총회 총회 회의록 1874년 8월 15일 오후 7시 30분, p. 84, https://documents.adventistarchives.org/Periodicals/GCSessionBulletins/GCB1863-88.pdf.
3 Maxwell, pp. 172, 173
4 엘렌 G. 화잇, 『교회증언 9권』, 117
필자: 테드 N. C. 윌슨 대총회장
- 이전글주인의 손에 들린 도구
- 다음글소리 없는 위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