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수이 역사와 신앙이 어우러진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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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지만 먼 나라, 대만에 온 지도 어느덧 9년이 되었다. 처음 이곳과 인연을 맺은 건 17년 전 배낭여행이었다. ‘자유 중국’이라 불리던 대만은 사실 오랜 계엄령의 역사를 가진 그리 자유롭지 못한 나라였다. 그럼에도 대만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며 빠르게 성장했고 중국의 견제를 받으면서도 발전을 이뤄 냈다. 또한 곳곳에 전통 민간 신앙의 사찰이 즐비한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다양한 먹거리와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대만에서 가장 잊지 못할 인상은 수수하지만 친절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친절함이 잊히지 않아 보이지 않는 그분의 이끌림으로 8년이 지나 이곳에 살게 되었다.
처음 대만을 여행하며 마주한 특별했던 것은 물조차 마실 수 없게 규정되어 굉장히 깨끗했던 전철과 각 가정 앞에 놓인 캠핑 화로 같은 물건이었다. 이것은 대만 사람들의 신앙을 보여 주는 ‘燒金紙(샤오진즈)’로 매일 아침 돌아가신 가족들을 생각하며 사후 세계에서 쓸 돈을 태우면 죽은 이들에게 전달되어 그들의 안녕과 번영을 보장해 준다고 믿는다.
비행기로 2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곳이지만 이렇게 독특한 문화를 가진 곳이 바로 대만이다.
황금빛 일몰이 빚어내는 매력의 도시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淡水(단수이)다. 바다가 품은 한적한 항구 도시인 단수이는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지만 그곳에 얽힌 역사와 이야기가 이 도시에 특별함을 더해 준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수이의 황금빛 일몰이다. 많은 사람이 석양을 보기 위해 항구로 모여들고, 버스킹이 펼쳐지기도 하며,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저녁 무렵 강과 바다가 만나는 단수이 항구에서 붉게 물든 노을을 바라보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항구 근처 옛 거리(Old Street)에서는 대왕 카스테라와 튀김 등 다양한 먹거리가 즐비하다. 또한 400년 넘게 간직해 온 유럽풍 건축과 100년 된 일본풍의 옛스러운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빨간 벽돌로 지어진 건물, 골동품 가게, 길거리 음식들이 어우러진 이곳의 오래된 골목길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고 따뜻한 풍경 속에서 단수이의 독특한 문화와 사람들의 일상을 경험할 수 있다.
단수이는 그저 여행지가 아니라 자연의 아름다움, 역사 그리고 문화가 어우러져 끊임없이 나를 끌어당기며 다시 찾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매력의 항구 도시
단수이는 대만에서 독특한 관광 도시로 타이베이에서 멀지 않아 많은 사람이 전철이나 강변 자전거길을 따라 이곳의 바다를 찾는다. 전철로는 빨간색 노선(Red Line)이 단수이 종점까지 이어지며, 반대편 종점은 타이베이의 랜드마크인 101빌딩이다. 이 노선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9년 전 처음 단수이에 왔을 때의 초심이 떠오른다. 일할 계획서와 제안서를 제출하고 이곳에 왔지만 지금은 특별한 인연으로 약 3시간 떨어진 중부 지역 타이중에 살고 있다.
단수이는 캐나다 의사이자 선교사였던 조지 맥케이가 처음 발을 디딘 곳이기도 하다. 그는 1872년 3월 9일, ‘해룡호’를 타고 당시 영국령이던 캐나다를 떠나 홍콩을 거쳐 단수이 항구에 도착했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그가 세운 학교와 병원 그리고 그가 꿈꾸었던 기독교 복음화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전통 민간 신앙이 뿌리 깊은 대만 사회에서 단수이는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100년이 넘는 교회 앞에서 결혼 사진을 찍는 사람들, 한적한 바다와 옛 거리를 거닐 수 있는 곳으로 많은 이가 이곳을 찾는다.
단수이에서 유럽풍 건축물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는 淡水紅毛城(담수 홍마오청, Tamsui Fort San Domingo)이다. ‘홍마오청’은 ‘붉은 머리 성’이라는 뜻으로 당시 대만을 점령했던 네덜란드인들을 현지인들이 ‘홍마오(紅毛, 붉은 머리)’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 이 요새는 1628년 네덜란드 식민지 시기에 지어졌으며 이후 스페인, 청나라, 영국 등 여러 세력의 통치를 거치며 군사적 요충지이자 외교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네덜란드 건축 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어 대만의 역사와 다양한 외세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홍마오청 옆에는 맥케이 선교사가 세운 진리대학이 있다. 이곳은 이국적인 건축 양식을 지닌 기독교 대학으로 담강중학교와 함께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지로도 유명해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초심을 찾다
‘不忘初心,方得始終’, 초심을 잃지 말아야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는 말처럼 맥케이의 발자취를 따라 그가 사랑했던 이 땅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단수이의 풍경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단수이의 매력은 늘 나를 이곳에 다시 오게 만든다. 그래서 대만에서 생활하며 마음이 복잡할 때면 이곳에 와서 기도하고 초심을 되새기곤 한다.
대만에서 교육, 의료 그리고 기독교 복음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한 선교사 조지 맥케이는 기독교 불모지였던 대만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마치 한국인들이 히딩크 감독에게 존경과 애정을 담아 ‘허동구’라는 한국 이름을 붙여 준 것처럼 대만 사람들은 그에게 ‘馬偕(마가이)’라는 대만 이름을 선물했다.
맥케이는 대만 복음화를 위해 담강중·고등학교와 진리대학 같은 학교와 병원(馬偕紀念醫院)을 설립했고, 대만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리기 위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 그가 청나라와 일본의 압제 속에서 보여 준 사랑은 대만인들에게 큰 희망이 되었다. 나 역시 처음 대만에 왔을 때의 각오를 되새기며 맥케이 선교사의 삶을 생각하고, 그의 동상 앞에서 다시금 겸허히 기도하며 이 땅에서의 나의 소명을 되돌아보게 된다.
대만에서 특별한 기도가 필요할 때마다 수십 번 찾아왔던 이곳, 단수이의 맥케이 선교사를 볼 때마다 선교의 길을 처음 떠날 때의 감동이 다시 떠오른다. 대만의 복음화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선교사의 동상 앞에서 노을 진 바다를 바라보며 150여 년 전 이 항구에 도착했던 맥케이 선교사의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리고 선교사로서 기본에 충실해야겠다는 다짐과 결심을 새롭게 한다.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떠올리며 내가 이곳에 무엇을 남기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되돌아보면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 주시고 경험하게 하신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된다. 미국 대학원에서 유학할 때 나는 고고학에 심취해 있었다. 중동 땅에서 인디애나 존스처럼 무언가 대단한 것을 발견해 내고, 그것으로 무엇인가를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이곳 대만은 보물 같은 청년들을 만나는 완전히 다른 여정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정말 보물 같은 존재임을 알게 된 것도 특별한 이끌림이 아닌가 싶다.
항구 앞에서 기도하며 150여 년 전 맥케이 선교사를 떠올려 본다. 그리고 바라건대 머지않은 미래에 대만이 더 이상 선교사가 필요한 땅이 아니라 오히려 선교사를 다른 나라로 보내는 땅이 되기를 소망한다.
- 권순범 -